↜ Tracking&Trav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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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익산 ↝
◀ 2023년 0월 0일 전북 익산 관광 트레킹 코스 ▶
↜ 익산 미륵산(430.2m) 트레킹 ↝
↜ 아리랑고개↝익산 미륵산성↝우제봉(405m)↝익산 미륵산(430.2m)↝산성 성벽길↝동문↝아리랑고개 ↝
↜ 사자암↝익산 미륵사지↝금마서동공원장↝왕궁리유적 ↝
◀ 2023년 0월 0일 전북 익산 관광 트레킹 코스 ▶
2023년 0월 0일(수) 대전 출발↝아리랑고개 주차↝사자암 주차장↝익산 미륵사지 주차장↝금마서동공원 주차장
↝왕궁리유적 주차장↝대전
거리; 약 154.6km, 시간; 약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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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주소 ↝
다듬재(아리랑고개) 도로 가변길에 주차; 전북 익산시 금마면 산북리 산 47-4
↝사자암 주차장;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산 135-2↝익산 미륵사지 주차장; 익산시 금마면 용순리 240
↝금마서동공원 주차장; 익산시 금마면 고도9길 41-14↝왕궁리유적 주차장;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6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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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 미륵산성&익산 미륵산(430.2m) 트레킹 ↝
↜아리랑고개↝익산 미륵산성↝우제봉(405m)↝익산 미륵산(430.2m)정상↝산성 성벽길↝동문↝아리랑고개↝
익산미륵산성[益山彌勒山城]. 전북기념물 제12호
2023년 0월 0일 익산 미륵산성, 미륵산 트레킹 ▶차량으로 아리랑고개 15번 군도에 주차↝미륵산으로 오르는 다듬재(아리랑고개)↝이정표(미륵산성 0.5k m)↝정정렬 명창길 이정표(←미륵산성 0.1km, 장암마을 3.3km↓, 등산로↑)↝미륵산성↝복원한 거대한 미륵산성 우측으로 가파른 오르막길↝바윗길 노프↝미륵산 주능선↝조망점↝우제봉(405m봉), 헬리포트↝T 갈림 ↰좌측길↝ㅏ갈림길(장항교)↝바위↝미륵산(430.2m) 넓은 미륵산 정상부(산불감시초소, 삼각점) 이정표(←기양재 (기양리연못)2.410km, 연수원 주차장1.940km, 약수터 0.990km, 심곡사0.600km↗,아리랑고개1.500km↘)↝산성 성벽길↝동문↝아리랑고개
거리; 약 4km, 시간; 약 2시간 소요
치성(雉城)은 성곽의 시설 중 하나로,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적들을 손쉽게 진압할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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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미륵산성 ↝
* 백제시대의 산성, 익산미륵산성(益山彌勒山城) *
익산미륵산성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기준성(箕準城)·용화산성(龍華山城)이라고도 한다. 익산 지역은 5세기 중엽부터 백제지방의 중심세력이었고 7세기를 전후하여 금강변의 웅포지역보다 내륙에 위치한 금마 지역을 중심으로 백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익산미륵산성은 일명 용화산성이다. 기준왕이 이 곳에 도읍하였다하여 기준성이라고도 부른다. 이 산성이 미륵산에 있기에 미륵산성이라고 하며, 미륵산의 명칭이 용화산이기도 하다. 기준왕이 도읍하였다기 보다는 마한의 여러 나라 중의 하나가 이곳을 중심으로 세력을 누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성도 그 때부터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고려초에 전주를 근거로 할거하였던 후백제의 신검이 부왕 견훤을 쫓았을 때 고려 태조가 이를 토정 討征하여 마성馬城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았다고 하는 그 마성이 바로 이 산성이다.
* 미륵산성을 경유하는 등산코스 *
해발 430m의 미륵산에는 정상을 기점으로 하여 북쪽에 있는 또 하나의 산봉우리를 향하고 있는 성 줄기는 다시 동쪽으로 꺾이어 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남쪽은 역시 정상에서 동남으로 향하여 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북으로 꺾이면서 수구를 향하여 내려간다. 아마 그 합쳐진 수구 근처에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축으로 되어있는 성 줄기는 지금도 완연히 남아 있는데 수구가 있었던 곳은 이젠 옛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 흔적이 산만하다. 산성의 둘레는 3,900척, 높이는 8척이며 성안에서는 석촉, 능철, 포석환, 기타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미륵사지에서 하차하여 등산코스를 이용, 정상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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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미륵사지 ↝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 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삼존을 위하여 전(금당), 탑, 낭무(화랑)을 세웠다고 한다. 이와 달리 미륵사의 창건에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신앙만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백제의 국력을 확장하기 위해 마한 세력의 중심이었던 이곳 금마에 미륵사를 세웠을 거라는 추측이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를 세우는 데에는 당시 백제의 건축·공예 등 각종 문화 수준이 최고도로 발휘됐을 것으로 짐작할 뿐만 아니라,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 도와주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삼국의 기술이 집결되었을 것이다. 미륵사가 백제불교에서 미륵신앙의 구심점이었음은 분명하며, 신라최대의 가람인 황룡사가 화엄사상의 구심점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황룡사가 1탑 3금당식인 것과 달리 미륵사는 3탑 3금당식 가람배치이다.황룡사는 왕을 정점으로 하는 화엄사상, 미륵사는 미륵사상을 가람에 구현하고 있다. 미륵사는 일반평민 대중까지 용화세상으로 인도하겠다는 미륵신앙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 미륵사지의 또다른 유물, 미륵사지 석탑과 당간지주 *
미륵사지에는 두 가지의 유물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그 하나는 미륵사지 석탑이고, 다른 하나는 미륵사지 당간지주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제 11호로 현재 높이 14.24m이고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석탑은 거의 전면이 붕괴되어 동북면 한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있으나 본래는 9층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은 1974~19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에 의하여 동쪽탑은 목탑이 아니라 석탑임이 밝혀져 이른바 동서 쌍탑의 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동탑은 그 뒤 발굴조사에 의해서 9층으로 확인되어 1993년에 9층(높이 27.67m)으로 복원되었다. 이 석탑을 우리나라 최고의 석탑으로 보고 있는 이유는 이 탑의 양식이 그 이전에 성행하였던 목탑의 각부 양식을 나무 대신 돌로써 충실하게 재현하였기 때문이다. 당간지주란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 즉 지주를 말한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 236호로, 높이 395cm이며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남쪽에 2개의 지주가 동서로 약 90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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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암 ↝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백제의 무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있었던 절로 이 절에는 유명한 지명법사(知命法師)가 있어서 서동(薯童)이 자주 찾아와서 가르침을 받았다. 뒷날 서동이 선화공주를 얻은 뒤 그가 가지고 있던 보물을 신라 궁으로 보내기 위해서 이 절에 있던 지명의 신통력을 빌려 신라 궁으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명이 머물렀던 사자사가 오늘날의 사자암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의 암자에서 출토되고 있는 토기나 기와조각 중에 고려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절의 중건 및 중수의 역사도 거의 전래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날에는 이 암자를 중심으로 죽사(竹寺)·수백암(水柏庵)·만방암(萬房庵)·영혈사(靈穴寺)·명적암(明寂庵)·천정암(天定庵) 등이 있었다고 전하며, 암자 바로 밑 석굴에는 많은 소동불(小銅佛)이 봉안되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또 암자의 서쪽에 있는 2개의 판자바위(板巖)는 석문(石門)이라고 하는데, 이 절을 창건할 때 바위를 깨낸 뒤 문을 만든 것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요사채 앞에는 작은 석탑 1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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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서동축제 ↝
익산문화재단 주관으로 매년 5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서동공원 일원에서 백제의 서동과 신라의 선화공주에 관련된 이야기를 주제로 개최하는 마을축제. 지역축제. 익산서동축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서동과 선화공주 설화를 축제 형식으로 재현하여 역사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익산시에서 매년 5월에 개최하는 축제이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 서동이 무왕이 된 이후 익산으로의 천도 등을 동기로 삼아 익산이 백제시대에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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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 왕궁리유적 ↝
익산 왕궁리 유적(益山 王宮里 遺蹟)은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 있는 백제의 유적이다. 1974년 9월 27일 전라북도의 기념물 제1호 모질메산성으로 지정되었다가, 1998년 9월 17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08호로 승격, 지정되었으며, 2015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되었다.
왕궁리성이라고도 부르며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발굴조사한 결과, 이 유적은 적어도 세 시기(백제 후기∼ 통일신라 후기)를 지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석탑 동쪽으로 30m 지점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기와 가마 2기를 발견했다. 특히 탑을 에워싼 주변의 구릉지를 중심으로 직사각형 모양의 평지성으로 생각되는 성곽 유물을 찾았다.
성곽의 모습은 현재 발굴을 통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또한 성곽 안팎으로 폭이 약 1m정도로 평평한 돌을 깔아 만든 시설이 발견되어 성곽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 지역 안에 있는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과 절터의 배치를 알 수 있게 하는 유물,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성이 발견되어, 백제 후기의 익산 천도설이나 별도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유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공주지역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 2곳(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미륵사지))등 3개 지역 8곳이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하여 세계 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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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시 주변 기타 관광지 주소 ↝
나바위성지;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6↝유천생태습지; 전북 익산시 동산동 1000-6
↝구룡마을 대나무숲; 전북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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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안내도 정보는 이동 경로 구성을 위한 참고용으로만 사용하십시오.
현재 탐색 경로가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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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산&미륵산성 안내도 ▼
익산 미륵사지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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