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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및 안내도

충남 부여 관광의(개요및 안내도)▶부여금성산+조왕사+부여 국립부여박물관↝수북정↝부산서원+대재각, 부산각서석↝백제문화단지

by 여행을즐기는사람 2023.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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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cking&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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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부여 

 부여 관광 트레킹 

 부여 금성산+조왕사수북정부산서원+대재각+부산 각서석백제문화단지 ↝

 부여 관광 트레킹 

0월 0일(금)대전 출발 국립부여박물관(부여금성산+조왕사) 주차장 수북정 주차장

대재각 + 부산 각서석 주차장

점심; 백강막국수↝백제문화단지 주차장1대전

 거리; 약 173km, 시간; 약 3시간 30분소요,  주유비;  2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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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서원 주변 점심 식사 

백강막국수; 041-835-5500 충남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 116 (2인이상)주문가능

(물막국수,비빔막국수,소머리 장터국수 9천원, 돈까스,얼큰이 칼국,비빔국수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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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주소 

국립부여박물관 주차장;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40-5수북정 주차장;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152-1

진병리마을회관 주차장;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 138백제문화단지 주차장1; 규암면 합정리 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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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금성산 트레킹 

 국립부여박물관  성황대  부여 금성산(124.4m)무노정  조왕사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읍내를 굽어보는 금성산. 금성산은 해발(124.4m)의 야트막한 산 이다.

부여 금성산 트레킹 코스 ▶ 국립부여박물관 주차장에 주차후 우측 인도길을 따라 조왕사방면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오른다   금성산개요 간판, 사비길 개요, 이정표(정림사지0.8km, 조왕사 0.1k m, 사비길(왕릉), 성화대0.1km, 통수대0.6km)방면 등로로 오른다  방부목 계단 오름길 성황대에서의 조망은 부여시가지(정림사지, 의열사) 뷰~ (금동대 항로가 새겨진 성황대 금동대 항로가 새겨진 성황대입니다. 사비 백제의 상징이라고 하는 성향대의 금성산은 백제 후기에 오산, 부산과 더불어 사모 명산의 하나인 일산으로 깊이 신성시된 산이 라고 전합니다. 백제가 번성했을 때는 이들 삼명산의 신들이 자주 왕래를 했다는 전설이 있어 조촐한 겉모습과 달리 백제와 부여 땅의 중요한 산이었 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부여의 대표적인 축제인 백제 문화제가 열리기 전에 이곳 성화대에서 삼신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운동시설 이정표(박물관 0.6k m,계백문 0.4km, 금성산 0.4km)운동시설, 금성산 산림공원 종합 안내도 삼거리 이정표(사비길(왕릉), 통수대0.3km, 사비길(정림정사), 무노정 0.1k m, 성화대 0.2km) 금성산 해발(124.4m) 무노정 삼거리로 유턴 조왕사방면으로 하산 숲속의교실 테크길 봉수대 돌탑 삼거리로 유턴 조왕사 금성산 조왕사(金城山朝王寺)/ 전통사찰 승려의 비와 사리탑, 범종각, 청화당(淸和堂) 요사채 겸 사용하는 전각, 석불(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호) 석탑(부여군 향토유적 제13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 불단에는 높 1.27m, 대좌 높이 96cm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1913년 발견된 석불로서 ‘금성산 석불좌상’이라는 명칭으로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 3층 석탑잔디가 입혀진 대웅전 뜨락에는 고색의 기운이 짙은 엉성한 모습의 석탑이 있습니다. 그는 1987년 여름 홍수 때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부근에 묻혀 있던 석탑의 부재들이 거친 홍수로 다시금 햇살을 보게 되자 그들을 꺼내 3층 석탑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바닥 돌과 기단, 1층 탑인은 전혀 어색함이 없어 하나의 탑이었음을 보여주나 2층과 3층은 발견된 탑들과 지붕들을 대충 끼어 맞추면서 상당히 어색한 모습을 자아내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 관람후 주차장으로 하산

금성산

이곳 금성산은 낮은 명성과 달리 부여의 꿀단지 같은 산이다. 산세가 넓고 길쭉해 부여읍의 동쪽 지붕 길을 이루고 있으며, 멀리 능산리 고분군과 청마 산성까지 이어진다. 또한 조왕사(금성사) 석불좌상 의열사, 금성산 성터, 백제 와적의단 건물 터 등의 늙은 문화유산 성화대, 국립 부여 박물관 등 많 은 명소를 품고 있다. 특히 성화대에 오르면 부여 읍내와 부소산, 백마강이 훤히 시야에 들어와 조망도 매우 일품이다. 성화대에서 부여 읍내를 굽어보며 한때 천하제일의 대도시로 위험을 날렸던 사비성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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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각서석 대재각(大哉閣, 부산각서석) 트레킹 

 부산서원  강변둘레길 쉼터  부여 대재각 부산각서석 

부여 대재각 부산각서석 트레킹 코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 138(진병리 마을회관)에 주차를하고 부산서원으로 이동  부산서원(부여동매 홍살문  가파른 돌계단 오름길  사문  김집과 이경여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우)   부산서원에서 확대경 이 설치된 검정색 주택 방면으로 진행 23번 주택에서 우측 길로 진행 이정표(백마강길(왕흥사지), 백강나루)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  강변둘레길 쉼터, 백마강길 안내도, 이정표(부산각서석) 방부목 계단오름길 이정표(부산각서석, 대재각, 백마강길(왕흥사지))  내리막길 묘1기 철개단 내리막길 대재각 부산각서석  U  백강막국수식당에서 점심 식사 (식당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마강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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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성산 해발(124.4m) 

사비 백제의 상징이라고 하는 성향대의 금성산은 백제 후기에 오산, 부산과 더불어 사모 명산의 하나인 일산으로 깊이 신성시된 산이 라고 전한다. 백제가 번성했을 때는 이들 삼명산의 신들이 자주 왕래를 했다는 전설이 있어 조촐한 겉모습과 달리 백제와 부여 땅의 중요한 산이었 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부여의 축제인 백제 문화제가 열리기 전에 이곳 성화대에서 삼신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사비 길, 부여 삼산 

부여 삼산이란 일산(금성산), 오산(오석산), 부산을 함께 부르는 명칭이나, 금성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부산이, 동쪽에 오산이 2km씩 떨어져 일직선상에 놓여져있다. 금성산으로도 불리는 일산은 부여 시가지의 동쪽에 위치하여 부여읍 동남리와 쌍북리 가탑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백제시대에 임금님이 거주하던 금성이 있던 곳으로 도성 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산은 부여읍 능산리 오산마을과 염창리 상염 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오석산으로 불린다. 부산은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 백강마을의 뒷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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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왕사 

일제강점기에 사세가 확장된, 조왕사
금성산 조왕사는 부여박물관 뒤편에 위치해 있으며, 일본인과 인연이 많은 사찰이다.
조왕사는 고려시대 이래의 사찰로 추정될 뿐, 구체적인 연혁이나 사세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없다. 이러한 조왕사가 사세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이다. 1913년 절 뒤편에서 비로자나불좌상을 발견하여 1919년에 법당을 짓고 이 불상을 봉안하여 중창하였다. 이후 1981년에 요사를 건립했는데, 1984년에는 일본인 불자들이 성금을 내어 종각을 세우기도 하였다. 조왕사는 절 이름이 ‘왕을 조근(朝覲)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압박과 설움을 받으면서 조선왕조를 섬기고자 사찰에서 기원한 듯 하다. 그 때문에 근래의 일본 불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된 역사에 대해 참회라도 하듯이 성금을 모아 종각을 세우는 불사를 하였을 것이다. 최근에는 1981년 요사, 1984년 종각, 1997년 대웅전을 새로 지었고, 일 때 발굴된 좌불을 봉안한 법당과 종각 및 요사 등을 갖추고있으나 소찰이다. 한편 화지산과 부여시가지 남쪽과 그리고 백마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여 경관이 좋을뿐만 아니라 암벽과 바위 사이에서 나오는 유명 약수가 있어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석불좌상 

그 석불은 1913년 금성산 남쪽 자락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1919년 김병준이란 사람이 석불을 봉안하고자 불당 1칸을 지으니 금성산을 찾는 주된 이유는 바로 조왕사에 머물고 있는 늙은 석불을 보고자 함입니다. (정면이 아닌 옆에서 보면 연꽃 대좌의 밑도리도 볼 수 있습니다) 석불의 높이는 127cm, 좌대 높이는 96cm 대좌 너비는 95cm입니다.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것이 조왕사 100년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절 이름인 '조왕'은 제왕을 조근한다' 는 뜻으로 왜정에 의해 강제로 닫은 조선 왕조를 섬기려는 의도에서 지어졌다고 전합니다. 1981년 요사를 새로 짓고, 1984년 왜인 불자들이 보낸 돈으로 종각을 지으며, 1987년 홍수로 발견된 옛 석합의 부재를 수습해 대웅전 앞에 복원했습니다. 손바닥만 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요사, 종각 등 3-4동의 건물이 있으며, 석불 와상과 석탑 등의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 부여 조왕사 석탑 

부여 조왕사 석탑(扶餘 朝王寺 石塔)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다. 1995년 6월 1일 부여군의 향토문화유산 제13호로 지정되었다. 1987년 7월 23년 폭우로 인하여 노출되어 발견되었다. 고려시대 석불(금성산 석불좌상)이 현존한 사찰에서 발견된 석탑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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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동남리)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국립 박물관이다. 백제 말기, 즉 사비백제 시대의 충청 동남권, 특히 부여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상설전시실 4곳과 야외전시장에서 유물 1만 1691점(2020년 기준)을 전시하고 있다. 제1전시실: 청동기 시대부터 사비 백제 이전의 충남 지역의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한반도 청동기 시대에서 중요한 송국리식 토기도 전시하였다. 제2전시실: 백제의 역사문화, 특히 사비 백제시대의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가 여기에 있다. 제3전시실: 백제의 공예와 미술품을 전시해 놓았다. 규암 출토 '미스 백제' 국보 제293호 금동관세음보살입상이 여기에 있다. 기증실: 박만식 교수가 기증한 백제 등 고대 토기류와 그 외의 다양한 기증자들이 기증한 여러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의 야외전시실에는 보물 194호 부여석조 및 석재 조각, 유인원 기공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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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북정&자온대 

수북정은 부여팔경(扶餘八景)의 하나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동에는 부소산(扶蘇山)과 나성(羅城)이 있고 정자 밑에는 백마강(白馬江)이 맑게 흐르고 있다. 수북정은 조선 광해군(1608∼1623) 때 양주(楊州) 목사(牧使) 김흥국(1557∼1623)이 건립하였다 하며, 그의 호를 따서 수북정이라 불린다. 김흥국(金興國)은 김장생(金長生), 신흠(申欽) 등과 친교가 매우 깊었으며, 지금도 신흠의 수북정(水北亭) 팔경시판(八景詩板)이 걸려 있다. 수북정은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 왕의 행차를 반기는 바위, 자온대 *
수북정 아래쪽에 있는 자온대(自溫臺)는 백제시대왕이 왕흥사(王興寺)에 행차할 때 이 바위를 거쳐가곤 했는데, 왕이 도착할 때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구들돌이라 명명했다 한다. 이 전설에 따라 자온대라 불려오며, 암벽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자온대(自溫臺)라고 쓴 친필이 음각 유존(遺存)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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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각서석 

부산 각서석(浮山 刻書石)은 충청남도 부여군 백마강가 암벽에 새긴 글씨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경여(1585∼1657 ) 선생의 의지를 후손에 알리고자 쓴 것이다.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되었다. 부여군 백마강가 암벽에 새긴 글씨로,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경여(1585∼1657 ) 선생의 의지를 후손에 알리고자 쓴 것이다. 조선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내던 백강 이경여 선생은 효종 8년(1657)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이완·송시열과 함께 청나라를 쳐야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왕은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땅하지만 진실로 마음이 아프나 뜻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다’라는 답장을 내렸는데, 청나라에서 그를 벼슬에서 물러나게 하도록 간섭하여, 결국 그는 부여로 낙향하였다. 그 후 우암 송시열이 이 내용을 여덟 자로 써서 후손에게 전하였고, 숙종 26년(1700) 그의 손자 이명이 그 글을 바위에 새긴 후, 바위 위에 건물을 세워 ‘대재각(大哉閣)’이라 하였다. 글씨의 필체가 힘차고 강건하여 금석문의 자료로도 소중한 가치를 지니며, 당시 벼슬을 그만두고 초야에 내려와서도 북벌계획을 왕과 협의하고 토론하던 늙은 재상의 굳은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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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문화단지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백제문화단지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던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건립한 한국 최대 규모의 역사테마파크이다. 넓은 부지 위에 웅장한 백제문화의 흔적이 남았다. 백제의 왕궁인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다. 백제의 왕실 사찰 능사는 부여읍 능산리 유적을 실물 크기로 복원했다. 중문인 대통문을 지나 마주하는 능사 오층석탑은 단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물이다. 위례성은 한성백제 시기의 성으로 사비궁과는 다른 시대 백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제형루에 올라서면 단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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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탐색 경로가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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