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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1박2일) ▶오갑산 관한리 임도↝명성황후 생가↝여주영릉↝영월공원↝신륵사관광지&여주 고달사지↝여주 파사성↝천서리 막국수촌↝대법사

by 여행을즐기는사람 2023.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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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 관광 트레킹 코스 

↜ Tracking&Travel 

이 까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입니다.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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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여주 

 2024년 0월 0일(1일차) 경기 여주 관광 트레킹 코스 

↜ 오갑산 관한리 임도명성황후 생가여주영릉영월공원신륵사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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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월 0일(2일차) 경기 여주 관광 트레킹 코스

↜ 여주 고달사지여주 파사성천서리 막국수촌대법사  

 

0월 0일(일) 대전 월평동 출발어우실경로당 주차장명성황후 생가 주차장여주영릉 주차장

영월공원 주차장신륵사관광지 주차장남강모텔

거리; 약 145.1km,   시간; 약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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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주소 

어우실경로당 주차장; 여주시 점동면 어우실길 181명성황후 생가 주차장; 경기 여주시 명성로 71

여주영릉 주차장; 여주시 세종대왕면 왕대리 921-1영월공원(영월루) 주차장; 여주시 주내로 13

신륵사관광지 주차장; 경기 여주시 천송동 288-85남강모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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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여주 

 2024년 0월 0일(1일차) 경기 여주 관광 트레킹 코스 

 오갑산 관한리 임도명성황후 생가여주영릉영월공원신륵사관광지 ↝ 

↜  오갑산 관한리 임도 둘레길 트레킹 

 

2024년 0월 0일 오갑산 관한리 임도 둘레길 트레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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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황후 생가 ↝ 

* 명성황후 생가에 대하여 *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비 명성황후(1851∼1895)가 태어나서 8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 그 후 정치에 참여하여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능은 청량리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홍릉으로 함께 합장되었다.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 1996년에 안채는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함께 지어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 명성황후 기념관에 대하여 *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하였으며 명성황후(明聖皇后, 1851~1895) 생가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전시실은 면적 520㎡로 명성황후와 고종의 어진 등의 유물·같은 시기에 활약하였던 여흥 민씨들의 유물과 관련 자료들을 전시한다. 명성황후의 친필과 시해당일 일본인이 사용했던 일본도(복제품), 시해장면을 재현한 매직비젼 영상물 등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옆에 있는 161석의 공연장에서는 명성황후와 관련된 영상물을 단체 관람객들에게 상영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명성황후의 개화사상과 민족 자주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명성황후 조각공원을 조성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생가 옆에 “명성황후탄강구리”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어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 옆에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 선생의 신도비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우측 산쪽 150m 지점에 그분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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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영릉(英陵)세종대왕)과 영릉(寧陵)효종,인선왕후) ↝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왕대리)에 있는 조선 제4대 왕인 세종과 왕비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沈氏)의 능. 사적 제195호. 당초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죽자 광주(廣州) 서강(西岡)에 쌍실의 능을 만들고 그 우실(右室)은 왕의 수릉(壽陵)으로 삼았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 세종이 죽자 합장하였다. 이 능제(陵制)는 『국조오례의』치장조(治葬條)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묘제의 기본이 되었다.

능의 석물은 병석(屛石) 가운데 영저(靈杵: 공이)·영탁(靈鐸: 방울)·지초문양(芝草文樣)을 빼고 운채(雲彩)와 십이지신상만을 새겨 조선병석문(朝鮮屛石文)을 확정하였으며, 혼유석(魂遊石)의 고석(鼓石)은 5개에서 4개로 줄였고, 기타 양식상 바꾸어 고친 것이 약간 있었다.

세조 이후 영릉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서거정(徐居正)의 반대로 옮기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다시 옮기자는 의논에 따라 여주로 옮겼다. 능제는 세조가 죽은 뒤부터 크게 바뀌어 병석과 석실제를 폐지하고 회격(灰隔)으로 하여 합장하고 능 앞에 혼유석 2좌를 놓아 양위임을 표시하였을 뿐 단릉과 마찬가지로 하였다.

여주로 영릉을 옮길 때 천장도감(遷葬都監)에서 석물을 함께 옮기자고 하였으나 왕명에 의하여 그 자리에 묻었다. 1973년에 석물들을 발굴하여 청량리 영휘원(永徽園) 북쪽에 세운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겼다. 혼유석, 장명등(長明燈), 2기(基)의 무관석과 문관석, 4기의 석수, 7기의 망주석과 구 영릉터에 세웠던 세종대왕신도비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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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월공원(영월루)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중층 팔작지붕건물이다. 원래 여주 군청의 정문이었으나 1925년 군수 신현태(申鉉泰)가 파손될 것을 염려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축하였다.

영월루 입구에는 비석거리가 있고 그 윗쪽에는 1958년에 이건된 여주 창리 삼층석탑(보물 제91호)과 여주 하리 삼층석탑(보물 제92호)이 있다. 상층 누마루에 올라보면 한강 상류 쪽으로 강물 건너편에 신륵사가 보이며 하류 쪽으로는 멀리 흥천면 마을이 보여 전망이 좋다.

누각의 바로 아래 북쪽 강안은 절벽이 깎아 세운 듯하고 기암괴석이 중첩되어 절경을 이루며, 이 절벽이 끝난 곳에서 약간 떨어진 지점에 큰 암석이 있는데, 이 암석이 여흥민씨(驪興閔氏)의 시조가 탄생하였다는 마암(馬巖)이다. 여기에는 ‘마암(馬巖)’이라는 글씨가 있으며, 이색(李穡)도 이곳에서 청풍명월을 즐기며 많은 글을 남겼다고 한다.

2층 누각의 이 건물은 정면 길이에 비하여 측면 길이가 짧으므로 평면은 긴 장방형이다. 장대석 기단에 놓인 높은 사각 초석 위에 짧은 하층 기둥이 세워져 누마루가 꾸며지고 그 위에 상층 기둥이 세워져 이익공과 결구되고 오량(五樑)의 지붕 가구를 짜 올렸다. 창방(昌枋: 기둥 머리에 기둥을 연결하고 평방 또는 화반, 소로 등을 받는 가로 부재)이 굵은 부재로 보강된 것은 문루의 가구법과 유사하다. 상층의 누마루 사방에는 계자각(鷄子脚: 누마루나 대청의 난간 중간에 풀무늬를 새겨 세운 가느다란 기둥)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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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관광지 ↝ 

* 역사체험과 휴양을 동시에, 신륵사관광지 *
신륵사는 아름다운 경관과 많은 유물·유적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고, 고려 우왕 2년(1376년)에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한 절이 되었다. 신륵사를 일명 "벽절" 이라 부르게 한 다층전탑이 묵묵히 여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나옹선사의 당호를 딴 정자 강월헌(江月軒)에서는 그 옛날 시인 묵객들이 시 한 수를 읊고 있는 것 같다. 신륵사는 남한강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다양한 유물 등 볼거리를 기반으로 1977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이후 많은 사람들이 자주 찾고 있다.

※ 우천 또는 결빙 등 기상악화시 운항 중지 ※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하고, 승선신고서 작성하여야 탑승 가능 황포돛배는 말 그대로 누런 포를 돛에 달고 그 바람의 힘으로 물자를 수송했던 배이다. 여주는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한강의 상류지류인 남한강을 끼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색으로 인해 조선시대 4대 나루 중 이포와 조포나루를 보유하고 있다. 이포와 조포나루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물자교역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주는 물자 교역이 번성하였던 중심 상업도시로서 가치가 있는 고장이라 할 수 있다. 황포돛배는 대부분 0.4t에서 0.5t 정도의 작은 배로 어업이나 물자 수송 등에 쓰였다. 몸통은 스기나무로 만들고 노는 쪽나무로 만들며, 돛대는 죽나무와 아주까리나무로 만든다. 돛대는 6m 정도로 길게 세우고, 황토를 물들인 기폭을 매단다. 가로 2m 50㎝, 세로 6m의 기폭을 황톳물에 담가서 물을 들인 후에 잘 말려서 사용한다. 황톳물은 두세 번 반복하여 들인다. 한번 마련한 기폭은 2~3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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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관광지 주변 숙박업소 

남강모텔; 031-886-0132, 주소; 경기 여주시 강변북로 7(일반실 3만 5천원, 트윈 4만원)

호텔마루; 031-885-6500주소; 경기 여주시 강변북로 73

(버금방 5만원, 으뜸방 안마의자 6만원, 으뜸방 스타일러 6만원)

하이텔; 031-884-3677, 주소; 경기 여주시 강변북로 69(일반실 5만원, 트윈 6만원, 특실 4만 5천원)

↜ 경기 여주 

 2024년 0월 0일(2일차) 경기 여주 관광 코스 트레킹 

↜  여주 피사성 둘레길 트레킹 

 여주 고달사지여주 파사성천서리 막국수촌대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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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월 0일(2일차)남강모텔고달사지 주차장파사성주차장천서리 막국수촌주차장

대법사주차장대전

거리; 약 192.8km,   시간; 약 3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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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주소 

여주 고달사지 주차장;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133여주 파사성 주차장;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 650

천서리 막국수촌 주차장;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길 20대법사 주차장; 여주시 가남읍 안금3길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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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피사성 둘레길 트레킹 

2024년 0월 0일 피사성 둘레길 트레킹 코스 피사성-(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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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고달사지 ↝ 

현재는 폐사된 고달사가 있던 사찰터. 고달사는 764년(경덕왕 23)에 창건되었던 사찰로 고달원(高達院)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 광종(光宗) 이후 역대왕들의 비호를 받던 사찰이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절터는 여주시 혜목산(慧目山) 산자락에 있다. 고달사 석조물은 모두 고달이란 석공이 조성했다는 전설이 있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불사에 혼을 바쳤다고 한다. 불사를 끝내고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 스님이 되었으니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다.창건 당시의 사찰은 실로 광대하여 지금의 상교리 일대가 전부 사역으로 추정되며 절 부근에 큰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지금 광활한 사역에는 유물만 남아 있다. 현재 절터는 복원을 위한 발굴 조사가 조직적으로 진행 중이다.고달사터에는 고려시대의 부도를 대표하는 국보인 고달사지 부도와 보물인 유물들이 있으며, 이들 석조 유물들은 하나같이 넘치는 힘과 호방한 기상이 분출하는 가운데 화려하고 장엄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원감국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고달사지 부도는 빼어난 균형미와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석불대좌(보물), 강렬한 힘을 간직하고 있는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비교적 온전히 보존되고 원종대사 혜진탑(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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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 파사성 ↝ 

이 성은 해발 250m 정도의 파사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한 석축산성이다. 성의 일부는 강기슭에 돌출되게 자리 잡아 상하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파사성은 성벽 등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으며 둘레는 약 1,800m 정도이며 성벽 중 최고 높은 곳은 6.25m나 되며 낮은 곳은 1.4m 되는 곳도 있다. 천서리를 면한 동문지(東門址), 금사면 이포리를 면한 남문지(南門址)에는 문앵(門櫻)을 세웠던 고주형 초석 2기와 평주 초석이 남았고 동문지에는 옹성문지(甕城門地)가 남아 있다.파사성은 신라 제5대 임금 파사왕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는 선조 25년(1592년)에 임진왜란 때 유성룡의 발의에 따라 승군 총익인 의암(義巖)이 승군을 동원하여 쌓은 둘레 1,100보의 성첩을 중수한 기록이 있다.

파사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1,800m이며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신라 파사왕(재위 80∼112) 때 만든 것으로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승려 의암이 승군을 모아 성을 늘려 쌓았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남한산성에 대한 비중이 증가하여 파사성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하였다. 현재는 동문이 있던 자리와 남문이 있던 터가 남아있다. 이 성은 성의 일부가 한강변에 나와있어 강 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하기 매우 좋은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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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서리 막국수촌 ↝ 

* 칼칼한 맛의 막국수가 유명한 곳, 천서리 막국수촌 *
천서리란 지명은 신래천(神來川)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천서리 막국수촌은 사적으로 지정된 파사산성 자락에 있는 막국수촌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다. 먹을수록 살아나는 칼칼한 매운맛이 입맛을 당겨 개운한 것이 일품이다.
* 동치미와 꿩고기 육수의 은은한 맛, 천서리 막국수 *
천서리 막국수는 꿩고기 끓인 물과 동치미국물을 차례로 섞어 만든 냉육수가 특징이다. 이러한 특유의 냉육수에 메밀이 어우러져 특유의 맛을 자아내는 것이다. 메밀은 경기도나 강원도 산간지방에서 많이 재배되는 식품으로 예부터 영양이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산후 음식으로 미역국보다 메밀국수를 먼저 먹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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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사 ↝ 

* 명성황후의 출생 전설과 관련된 사찰, 대법사 *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된 신생사찰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통일신라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 높이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하여 ‘미륵당’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1971년부터 대웅전과 요사채, 1988년에 지장전과 종각을 세웠으며 1989년 대웅전을 중수하였다.경내에 구조물로는 일주문, 국사당, 범종각, 대웅전, 지장전, 삼성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석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었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 삼층석탑, 약사여래좌상이 있다. 지장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이며 지장보살, 지장탱화, 칠성탱화, 시왕도, 범종을 봉안하고 있다. 삼성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에 콘크리트 건물로 독성상, 산신상을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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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탐색 경로가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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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한리 임도 안내도 

명성황후 생가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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