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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2박3일)여행자료▶어상지↝영천탑지↝화랑설화마을↝동댕이못↝봉림사↝보현산댐 출렁다리 둘레길↝포은정몽주생가↝임고서원↝동린각↝강호정

by 여행을즐기는사람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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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영천시 (2박3일) 여행자료 

↜ Tracking&Travel 

이 까페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입니다.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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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2024년 0월 0일(1일차)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도사노사나불괘불탱 거조사 + 영산전 + 삼층석탑 영천한광사 + 화남동삼층석탑

어상지 영천탑지 화랑설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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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월 0일(2일차)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동댕이못 ↝ 와계정+영천조양각 ↝ 영천귀애정 ↝ 임란의병 한천전승첩지 

↝ 영천봉림사 + 대웅전 영산회상도 ↝ 보현산댐 출렁다리 둘레길 보현산댐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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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월 0일(3일차)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포은정몽주생가 ↝ 임고서원 ↝ 동린각+자양서당 

 영천강호정 + 삼유정 + 사의당 + 오회당 + 하천재 + 오회공종택 

아래의 제목을 클릭! 하시면 안내도와  관광 개요 내용  보실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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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월 0일(1일차)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0월 0일(금) 대전 출발  도사노사나불괘불탱 주차장  거조사 주차장  영천한광사 주차장 

 어상지 주차장  영천탑지 주차장  화랑설화마을 주차장  무인텔M

거리227.1km, 시간; 4시간통행료; 약 8,800원,  주유비; 약 33,13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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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경로주소 

도사노사나불괘불탱 주차장; 경북 영천시 신녕면 치산관광길 404 

↝ 거조사 주차장; 경북 영천시 청통면 거조길 400-67 

↝ 영천한광사 주차장;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508-1어상지 주차장; 영천시 화산면 유정안길 14-4

영천탑지 주차장; 영천시 금호읍 금호로 372-12화랑설화마을 주차장; 영천시 금호읍 황정리 26-4 

 무인텔M; 경북 영천시 송죽길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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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2024년 0월 0일(1일차)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도사노사나불괘불탱 거조사 + 영산전 + 삼층석탑 영천한광사 + 화남동삼층석탑

어상지 영천탑지 화랑설화마을

2024년 0월 0일(1일)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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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사노사나불괘불탱(修道寺盧舍那佛掛佛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수도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괘불도.

1704년(숙종 30)에 그려진 노사나불로서 1822년(순조 22)에 한 차례 개수하였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원만상 보살 형태의 독존 형식으로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꽃가지를 받쳐들고 있다. 보관 주위에는 삼신불(三身佛) 중 법신불인 비로사나불 형태의 화불이 둘러서 있다. 노사나불은 거친 삼베 위에 그린 그림으로 굵은 윤곽선에 비해 세부선을 정밀하게 표현하여 선의 강약이 잘 나타난다. 밝은 육색에 팔부분부터 머리 위까지 화려한 오색 방광(放光)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둥근 어깨 위부터 팔꿈치까지 검은색의 보발(寶髮)이 흘러내려 상의 형태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색상은 조선시대 후기 불화의 특징인 붉은색과 녹색 위주로 표현하였으며 몸광배 바탕과 하의 자락은 하늘색으로 표현하여 가운데의 상(像)을 강조하였다. 치맛자락은 옷주름을 구불구불하게 처리하여 잔잔한 율동감을 주며, 움츠린 듯하면서도 풍부한 둥근 어깨, 약간 처진 눈썹, 색상 등은 조선시대 효종, 숙종대 불화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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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조사(居祖寺) 

거조사는 신라 효성왕2년(738) 원참조사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고도 하고 경덕왕(景德王)때 세워졌다고도 한다. 거조사라는 이름은 팔공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며, 아미타부이 항상 머문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사실 이 저은 은해사 보다 먼저 지어졌지만, 지금은 은해사에 속하는 말사이다. 거조암의 중심 건물은 영산전으로, 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어져 있다. 영산전은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세워졌으며, 석가모니 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목조건축물이 13세기 초에 건립된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1308), 거조사 영산전(1375), 봉

 영천사 거조사 영산전(永川 居祖寺 靈山殿) 

거조사는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있으며, 아미타불이 항상 머무는 곳이라는 뜻이다. 신라 효성왕 2년(738) 원참조사가 처음 세웠다고도 하고, 경덕왕 때 세워졌다고도 한다. 영산전은 거조사의 본전(本殿)이다. 해체 보수 할 때 벌견된 기록에 따르면,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세워졌으며,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고 한다. 기둥머리 바로 위에 공포(栱包)를 짜 넣은 주심포계 양식으로 소박하고 간결한 덕이 특징이며 정면 7칸, 측면 3칸, 5량 구조의 맞배집이다. 기둥이나 들보 등은 옛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형태와 구성에서 백제계 고려 건축의 흔적을 엿볼 수 있고, 일반적으로 조각 수법이 적용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고쳐 지으면서 많은 부분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안에는 저마다 다른 표정을 띤 석조 나한상 526분이 모셔져 있다.

 영천 거조사 삼층석탑(永川 居祖寺 三層石塔) 

영천 거조사 삼층석탑(永川 居祖寺 三層石塔) 영천 거조사 삼층석탑은 영산전 앞에 있으며 탑 전체 높이는 3.15m이다.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말기에서 고려 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겻으로 추정된다. 특히 기단에 안기둥 한 개를 새긴 점과 덮개돌 윗면이 경사진 점, 노반의 낙수면이 짧은 점, 추녀가 두껍게 되어 있는 점 등은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탑 구조와 마찬가지로 상층기단 면석과 각층에 있는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 조각이 새겨져 있다. 탑의 꼭대기인 상륜부(相輪部)에는 네모난 지붕 모양 장식인 노반(露盤)이 남아 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은 모두 다른 돌로 되어 있고 기단부의 면석 일부와 지대석은 후대에 보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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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광사(閑曠寺) 영천 한광사(永川 閑曠寺) 

영천 한광사 (永川 閑曠寺)는 영천 신녕면 화남리에 있는 대승불교 법왕종의 총본산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고 전해지나 폐사지로 있었는데, 1958년 최명도 스님이 중건하여 법왕종의 본산으로 삼았다. 중건 후 대웅전·극락전 등의 불사가 진 행되고, 사역 내에 있는 삼층 석탑과 석불좌상의 보수, 복원 공사가 있었다. 석불은 별도의 보호각을 세워 봉안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극락전, 대적광전, 산신각, 칠성각 등의 전각을 비롯하여 사찰에서 운영하는 납골당(명부전)과 법왕종 총무원 건 물, 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한광사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영천 화남동 삼층 석탑과 화남동 석불좌상이 1980년 9월 16일 보물 제675호와 보물 제676 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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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 화랑설화마을 

신라 천연동안 만들어 온 이야기, 천년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우리 고유의 이야기! 천년의 역사, 천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테마파크이다. 화랑설화마을은 단순하게 예스러움을 재현해 놓은 곳이 아닌 우리 고유의 설화들이 가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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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댕이못, 도계서원 주변 숙박지 ↝

 동댕이못 주변 숙박지 

무인텔M; 054-337-7339, 경북 영천시 송죽길 115(3만원~)(무인텔 M 예약)

2층을 이용하시는 고객님은 지정된 호실에 주차해주세요.

 도계서원 주변 숙박지 

더자라모텔; 054-336-6266, 경북 영천시 북안면 운북로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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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주변 맛집 ↝

  2024년 0월 0일(2일차)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0월 0일(토) 무인텔M 출발  동댕이못 주차장  와계정 주차장  영천귀애정 주차장  

임란의병 한천전승첩지 주차장 영천봉림사 주차장 보현산댐 전망대 주차장

우로지 주차장 유나호텔

거리74.9km, 시간; 2시간 30분통행료; 약 12,100원,  주유비; 약 10,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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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경로주소 

동댕이못 주차장; 경북 영천시 도동 17-1와계정+영천조양각 주차장; 경북 영천시 창구동 26-5

영천귀애정 주차장; 경북 영천시 화남면 귀호1길 37-17

임란의병 한천전승첩지 주차장; 경북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 46

 ↝ 영천봉림사 + 대웅전 영산회상도 주차장; 경북 영천시 화북면 천문로 2149-368 

↝ 보현산댐 출렁다리 둘레길 + 보현산댐 전망대 주차장; 경북 영천시 화북면 천문로 2610 

↝ 우로지 주차장; 경북 영천시 망정동 416 ↝ 유나호텔; 경북 영천시 시청남1길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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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2024년 0월 0일(2일차)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동댕이못  와계정 + 영천조양각  영천귀애정  임란의병 한천전승첩지  

영천봉림사 + 대웅전 영산회상도  보현산댐 출렁다리 둘레길 (4.64km) + 보현산댐 전망대

2024년 0월 0일(2일)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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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조양각(永川朝陽閣)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후기 영천군수 한덕급이 중창한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시도유형문화재.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981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368년(공민왕 17) 부사 이용(李容)이 명원루(明遠樓)를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그 후 1637년(인조 15) 군수 한덕급(韓德及)이 누각 15칸, 협각 3칸을 중창하여 이름을 ‘조양각’이라 고쳤다 한다. 1742년(영조 18) 군수 윤봉오(尹鳳五)가 3중창하였으나 1920년대 일본인들에 의해 협각을 비롯한 내ㆍ외문이 철거되고 조양각 1동만 남게 되었다. 조양각은 좌협칸에는 전면에 전퇴 1칸이 형성되고, 그 뒤쪽으로는 2고주를 좌우로 세워 2통칸의 온돌방을 꾸몄는데, 현재 사면의 벽은 모두 개방되어 있다. 온돌방 이외는 모두 우물마루를 깔고 개방시켰다. 대청의 가구는 5량가인데, 대량 위에 주두(柱頭)를 놓고 보아지를 두공처럼 짜아 중도리 및 받침 장여를 받는 이중의 첨차를 결구시켰고, 종량 위에는 판대공을 두어 종도리를 받쳤다. 측면에서 우미량(牛尾樑)처럼 충량이 휘어올라와 중도리 왕지 부분이 충량 등에 얹히도록 하였다. 평주상의 공포는 2익공형이며, 창방과 짜인 주두 아래의 헛첨차와 대량 받침 보아지가 내부에서는 한몸의 보아지로 처리되었다. 각 주칸 사이에는 화반(花盤: 주심도리 밑 장여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두었는데, 전후 퇴칸에만 1매씩이고 나머지는 각각 2매씩 두었다. 이 건물은 금호강의 풍경과 잘 어우러진 위치와 더불어 주상의 공포형식과 상부 가구수법 등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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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천 귀애정(永川 龜厓亭) 

귀애정은 조선조 순조시대에 문인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사간, 사헌부 집의, 돈령부 도정을 역임하고, 공조 참의를 제수 받았으며, 특히 심학에 심취하고 대학강록의 저서를 남긴 조극승(曺克承 1803~1877)을 추모하여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조극승의 자는 경휴, 호는 귀애(龜厓), 관향은 창녕으로 현고서당을 창설한 북계 조용석(北溪 曺龍錫) 선생의 현손이며, 화남면 귀호리에서 조경섭(曺暻燮)의 아들 4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귀애정 앞에는 방형(方形)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에는 둥근 섬을 만들어 음양이 조화를 이루었다. 또한, 육각정자를 섬내에 두어 나무다리를 통하여 통행하도록 하였으나, 약 30여 년 전에 되괴된것을 2009년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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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란의병 한천 승첩탑명(壬亂義兵漢川勝捷塔銘) 

1592년 4월 13일 대군을 이끌고 침입한 일본군에 의해 부산성, 동래성, 울산성, 경주성이 함락되고 영천성마저 함락되자 백성과 초토화되는 강토를 구하고자 신녕현 추곡 가래실(현재의 화산면 가상리)의 안동 권씨 문중을 중심으로 4월 27일 의병이 창의했다. 의병들은 5월 6일 이곳 한천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된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둠으로써 훗날 영천성 수복의 발판을 마련했다. 의병들은 이날 한천 땅 대동(大洞, 현재의 화남면 삼창3리)에서 피난민을 약탈하던 일본군 3명을 활로 쏘아 죽이고 검으로 10여 명의 목을 베었으며 일본군의 첩자로 활동한 희손 일당 30여 명을 소탕했다. 한천전 승첩지인 이곳에 기념탑, 사당 백의사 등을 건립하여 목숨 바쳐 의병활동에 참가한 의병들의 넋을 위로하는 한편 당시의 의병활동상을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호국정신을 고취시키는 역사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백의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이고, 내삼문과 전사청 등의 건물이 있다. 호국의 성지 임란의병 한천전 승첩지(漢川戰勝捷址)는 2006년 2월 16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5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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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림사(鳳林寺) 

봉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1742년(영조 18)에 징월이 창건하였으며 인근 보현산에 있던 법화사를 학서산으로 옮겨왔으며, 법화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사찰을 옮겨온 설화가 전해지는데 법화사의 한 사미승이 탁발을 나갔다가 병이 들어 절에 돌아오지 못하고 민가에서 요양하였다. 사람들은 사미승을 극진히 보살폈는데, 여름이 되자 개고기가 몸을 회복하는 데 좋다며 먹으라고 권하였다. 사미승은 고민 끝에 개고기를 먹고 병이 나아 칠월 칠석이 되어 절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번개와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밤새 내리더니 다음 날에 승려 1명이 사라졌다. 그 후 매년 칠월 칠석이면 어김없이 밤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다음 날에 승려 1명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급기야 주지가 회의를 열고 칠석날 모든 승려의 몸에 실을 연결하여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아보자고 하였다. 다음 날 역시 한 승려가 사라졌고 실을 따라가 보니 산 중턱 바위 굴속에 큰 지네가 잠을 자고 있었고, 이 화를 피하고자 절을 옮겼다고 한다. 경내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으며,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는 삼존불상과 후불탱화신 , 중탱화, 지장탱화, 칠성탱화 등의 탱화가 남아 있다.

 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 및 복장유물(永川鳳林寺靈山會上圖─腹藏遺物) 

경상북도 영천 봉림사 대웅전에 봉안되어있는 조선 후기 불화와 복장유물 일괄.

화기에 의하면 봉림사 영산회상도의 조성은 3인의 대시주자에 의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시주자는 불굴사(佛屈寺)종밀(宗密)로 바탕과 불사에 수요되는 공양(供養)을 시주했으며 최후종(崔厚種)은 채색 안료를, 당시 법화사 승려였던 신오(信悟)는 배접에 사용할 종이를 시주하였다. 제작에 관련한 더 상세한 정보는 불화와 함께 발견된 복장물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복장물은 발원 내용을 수록한 발원문(發願文) 1매와 당시 사찰 소속 승려들을 기록한 본사질(本寺秩) 2매, 시주에 참여한 명단인 시주질(施主秩) 1매, 그리고 목조 후령통과 복장주머니[腹藏囊]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림사 영산회상도는 18세기 경북지역에 있어 의균 이후 팔공산화파의 불화 제작과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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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로지 주변 숙박지 

유나호텔; 050-3505-07233, 경북 영천시 시청남1길 12-5 (4만원~)(옥션 예약)

청우장모텔; 054-331-8763, 경북 영천시 삼산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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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주변 맛집 ↝

  2024년 0월 0일(3일차)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0월 0일(일) 유나호텔 출발  포은정몽주생가 주차장  임고서원 주차장  동린각 주차장

 영천강호정 주차장 ↝ 대전

거리219.9km, 시간; 3시간 30분통행료; 약 12,100원,  주유비; 약 32,008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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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경로주소 

포은정몽주생가 주차장; 영천시 임고면 효자로 344 ↝ 임고서원 주차장;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504 

↝ 동린각 + 자양서당 주차장;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산 6-1 

 영천강호정+삼유정+사의당+오회당+하천재+오회공종택 주차장;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 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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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2024년 0월 0일(3일차)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포은정몽주생가  임고서원  동린각+자양서당  

영천강호정+삼유정 + 사의당 + 오회당 + 하천재 + 오회공종택

2024년 0월 0일(3일) 경북 영천시 관광 트레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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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은정몽주생가 

주차장에 '포은 정몽주 선생의 생가' 안내도가 있고, 생가 입구에는 주차장과 화장실 건물, 관리실, 성임문이 있고, 성임문 옆에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성임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존양당, 부엌채, 안채 영정각이 있습니다. 안내도 옆에는 '포은선생탄생지(圃隱先生誕生地)'라는 커다란 바위가 한문으로 새겨져 있다. 성임문(聖臨門) 오른쪽 옆에는 포은정몽주선생의 동상이 있고, 동상 아래에는 정몽주 (1337~1392) 선생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포은 정몽주 선생 동상 주변에는 깨끗하고 잘 관리된 소공원과 곳곳에 시를 바위에 새겨놓고 해석도 잘 되어 있네요. 성임문 왼쪽 옆에는 붉은 큰 돌에 충의단성(忠義丹誠)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요. 이 붉은 돌은 선생의 24대 종손 래정(來晶)씨가 선생의 생가 중창 기념으로 중국 태항산에서 생산되는 홍보석(紅寶石)을 수입 기증하여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성임문(聖​臨門)의 유래는 포은 정몽주 선생이 태어날 때부터 몽룡(夢龍)으로 불리어 지다가 관례를 치를 즈음 아버지 꿈에 중국 주나라 성현이신 주공이 나타나 아명을 버리고 몽주(夢周)로 고치게 되면서 생가의 대문을 성임문(聖​臨門)이라 정하였다고 합니다. 성임문 입구에 있는 벽에는 포은 정몽주선생 생가 운영 안내가 걸려 있고, 성임문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정면에 바라보는 건물이 안채, 좌측은 부엌 채와 우측이 사랑채입니다. 안채의 건축 구조는 방 3칸, 마루 2칸, 부엌 1칸 등 6칸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과 부엌이 내부로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채는 존양당(存養堂)... 야외 마당에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일대기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연대기의 내용을 간략하게 알아보면 정몽주 선생의 첫 이름은 '몽란', 태몽에 모란을 보았다고 하여 '몽란(夢蘭)' 이라 지었고, 태어났을 때 몸에 북두칠성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9살 때는 어머니 꿈에 용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데 밖에 나가 보니 '몽란'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어서 몽룡(夢龍)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후에 아버지 꿈에 주나라의 주공(노나라 시조)을 보았다고 하여 이름을 몽주로 바꾸었다는 내용입니다.

포은정몽주선생의 일대기 외에도 장독대와 우물도 전시되어 있어요.

영정각(影幀閣)은 선조들 중 상징적인 인물 등의 영정을 보관한 건물로 나무 기둥이 썩거나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와 와편을 끼워 넣어서 흙과 나무기둥이 맞닿지 않도록 지어졌습니다. 영정각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 선생의 영정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포은 정몽주 선생 생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곳에는 1992년 7월 1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72호로 지정된 포은 정몽주 유허비가 있습니다. 이 비가 세워진 유래는 고려시대의 문신이며 학자인 삼은의 한 사람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출생지에 세운 유허비로 고려 공민왕5년(1355) 부친상을 당하여 묘소에서 3년 상을 지내고, 그 후 1365년 11월에 모친 상을 당하여 3년상을 지내면서 그의 지극한 효성이 조정에 보고되어 출생지인 효자리(孝子里)라 새긴 비가 영천 군수 정유에 의해 공양왕 원년(1389)에 세워졌네요. 포은 정몽주 유허비에 있는 비석에는 효자리(孝子里)가 새겨져 있고, 포은정선생지각 (圃隱鄭先生之閣)이 있습니다.

포은 정몽주 생가 운영안내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공휴일을 포함하여 개관하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능합니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인데요. 자세한 문의 사항은 포은생가 관리사무실(054-331-1395) 이나 영천시 시민회관 담당자 (054-330-6548)를 통해 답변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작성자 영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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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고서원(臨皐書院) 

임고서원(臨皐書院)은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있는,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1985년 10월 15일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었다.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정몽주(1337∼1392)는 공민왕 9년(1360)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정승 자리에까지 오른 문신이다. 왜구 토벌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당시 긴장상태에 있던 명나라에 건너가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의 시조로 불리며 시와 글, 그림에도 탁월했다. 특히 시조 단심가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그의 충절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걱정하며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이방원(조선 태종)이 살해하였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지었으며, 이 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인조 21년(1643)에는 여헌 장현광을, 영조 3년(1727)에는 지봉 황보인을 추가로 모셨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으나 1965년에 정몽주의 위패만을 모시고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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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양서당(紫陽書堂) ↝ 

197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1546년에 김응생(金應生)이 향리의 후진교육을 위해 자양면 노항동에 창건하였다. 1553년에는 퇴계이황이 자양서당(紫陽書堂)이란 당호를 증정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 맛배지붕인데 우측 2칸은 마루로 되어있고 좌측 2칸은 방으로 되어 있다. 동린각(東麟閣)에 봉안되어 있는 김완(金完) 장군은 김응생의 셋째아들이다.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어 현 위치로 옮겨 지었다.

 동린각(東麟閣) ↝ 

동린각(東麟閣)은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과 김완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건축물이다.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충무공 이순신과 김완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건물로 원래는 자양면 노항동에 세웠으나, 정조 9년(1785)에 불타서 정조 11년(1787)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한 것을 1960년 성곡동으로 옮겨 지으면서 수리하였다.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가운데 2칸을 대청으로 꾸미고, 뒤쪽 1칸에 신주를 두어 위패를 모시도록 하였다. 기둥은 네모·여덟모·원형 등 세 종류를 사용하여 격조있게 하였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는 주심포양식으로 안동과 영천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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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정(江湖亭) 

강호정(江湖亭)은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정자 건축물이다.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대장 정세아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누각이다. 선조 32년(1599)에 지은 후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가 있었는데, 지금의 건물은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1977년에 현 위치로 옮겨 다시 지은 것이다.

정세아는 임진왜란 당시 영천·경주지방을 되찾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전쟁이 끝난 뒤 국가에서 수여하는 모든 영예를 사양하고, 고향인 용산동에 이 정자를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양쪽에는 각 2칸의 방이 있고, 가운데 1칸이 마루로 꾸며져 있으며 화려한 난간을 설치하였다. 뒤에는 2채의 작은 부속건물이 있는데, 그 마당을 통해 정자로 오르게 되어있다.

 사의당(四宜堂) 

사의당(四宜堂)은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지어진 강학당이다.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사의당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강학당으로, 조선 영조 8년(1732)에 정중호의 형제인 중기·중범·중락 등이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고 학문연구와 제자교육을 위해 지은 것이다. 원래는 자양면 용산동에 지은 것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앞면 5칸·옆면 1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건물이다. 왼쪽 2칸은 마루이고 오른쪽 3칸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에는 둥근 기둥, 방에는 네모 기둥을 사용하였다. 사의당 이외에 앞면 6칸·옆면 1칸의 규모로 행랑채인 수의당이 있다.

 영천 오회공 종택(永川 五懷公 宗宅) 

영천 오회공 종택(永川 五懷公 宗宅)은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종택이다.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하여 영천·경주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정수번의 셋째아들인 호신이 결혼하여 살던 집이다. 조선 광해군 12년(1620)경에 지었으며, 효종 6년(1655)에는 사당을 세웠다. 1977년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앞면 5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오회당(五懷堂) 

오회당(五懷堂)은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오회당 정석현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3년(1727)에 관찰사 권대규가 지은 건축물이다.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오회당 정석현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 3년(1727)에 관찰사 권대규가 지었다. 1977년 영천댐 건설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소박하게 지어진 건물로,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이다.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인데, 양쪽 옆면에 눈썹지붕을 이어 달아서 마치 팔작지붕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런 예는 영천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한쪽에 마루 2칸, 다른 한쪽에는 방 2칸을 나란히 들였다.

 하천재(夏泉齋) 

하천재는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대지에 재사, 부속사, 대문채를 ‘ㄷ’자 형태로 배치하고 일곽은 블록담장을 둘렀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가운데 둔 두 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1칸, 우측에 2칸의 방을 드린 형식이다. 우측방의 배면에는 벽장을 설치하고 배면을 제외한 모든 면에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대청 전면은 판벽사이 문을 설치하여 폐쇄시켰다. 정지한 대지에 기단을 낮게 조성하고 화강석 초석을 놓았다. 기단 상면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기둥은 모두 각주를 세웠는데 단면크기가 180×180㎜로 규모에 비해 세장한 것을 사용하였다. 기둥상부는 장혀와 납도리를 수장하고 보아지를 받쳐 보를 결구하였다. 가구는 3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제형 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게 했다. 종도리 장혀 하부에는 상량 묵서가 기록되어 있다. 창호는 방의 경우 정면과 양 측면에 창을 내어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청방 간 출입문은 아래 굽널을 끼운 사분합 들어열개문을 달았다. 대청 전면에는 아래 굽널을 끼운 사분합 들어열개문을 달아 마루방을 이루게 하였다. 대청 뒷벽은 쌍여닫이판문을 달았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함석가첨을 덧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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